바티칸 박물관, 유명한 작품만 보기에도 벅찼던 거대한 예술의 세계

2026. 10. 28. 05:37ㆍ세계여행/시니어세계일주

바티칸 박물관은 시간을 충분히 두고 전시품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감상하고 싶은 곳이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조각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 천장화와 태피스트리까지 볼거리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작품 하나하나에 시간을 들여 감상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관람객도 많고 전시품도 어마어마하게 많으니 어느 박물관에 가면 그렇듯 이름난 작품 위주로 찾아보게 되었다. 미리 알고 간 작품은 눈여겨보고, 처음 보는 작품 앞에서는 잠시 멈춰 서서 살펴보는 식이었다. 제대로 보려면 며칠을 두고 관람해야 할 것 같은 곳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에 가면 늘 비슷한 마음이 든다. 작품을 많이 보는 것도 좋지만,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작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천천히 감상하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일 것이다. 하지만 여행 중에는 시간의 제약이 있고, 수많은 관람객 사이에서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물기도 쉽지 않다. 바티칸 박물관 역시 그랬다. 그럼에도 이곳은 단순히 유명한 작품 몇 점을 보는 것만으로도 서양 미술의 오랜 역사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조각들을 보면서는 인간의 몸을 표현한 솜씨에 감탄했다. 단단한 대리석을 깎아 만들었는데도 근육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 옷의 주름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특히 유명한 조각들은 사진으로 보았을 때와 실제로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 달랐다. 작품의 크기와 입체감은 물론이고,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도 인상이 달라졌다. 바티칸 박물관에는 이런 조각들이 한두 점이 아니라 수없이 많으니, 하나씩 제대로 감상하려고 했다면 하루 일정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 같다.

 

 

그런데 조각들을 살펴보다 보니 인체의 아름다움이나 신화 속 인물뿐 아니라 장식적인 표현도 눈에 들어왔다. 가슴에 과일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조각들이 있었는데, 사람의 몸에 과일을 장식한 모습이 무척 독특했다. 이런 장식은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에서 볼 수 있는 과일 화환이나 풍요를 상징하는 모티프와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다. 포도와 과일, 나뭇잎을 엮은 화환은 풍요와 번영, 축제와 제례 등을 상징하는 데 사용되었다. 다만 실제로 본 조각의 정확한 명칭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과일을 장식 요소로 활용한 고대 미술의 전통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고대인들에게 과일과 식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풍성한 수확은 풍요를 뜻했고, 포도와 포도잎은 술과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와 관련되기도 했다. 로마 시대의 건축물과 조각, 석관과 부조에도 과일과 잎사귀를 엮은 장식이 자주 등장한다. 오늘날에는 이런 장식을 보면 화려하다는 생각부터 들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신화와 종교, 생활 속 믿음이 담긴 표현이었을 것이다. 오래된 작품을 감상할 때 그 시대의 상징과 관습을 함께 알아두면 눈앞의 장식도 전혀 다르게 보인다.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벽에 걸려 있던 커다란 직물 작품들이었다. 그림이라고 하면 보통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린 작품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곳에는 실을 엮어 그림처럼 만든 작품들이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천의 질감이 느껴지고, 멀리서 보면 마치 회화처럼 인물과 풍경, 종교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이런 작품을 태피스트리(tapestry)라고 한다. 단순히 벽을 꾸미기 위한 천이 아니라, 숙련된 장인들이 색실을 짜서 그림과 이야기를 표현한 직물 예술품이다.

 

태피스트리는 유럽에서 중세 시대부터 중요한 장식 예술로 발전했다. 특히 큰 성이나 귀족의 저택, 교회와 궁전의 넓은 벽을 장식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당시 건물은 오늘날처럼 난방이 잘되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두꺼운 직물을 벽에 걸어 실내의 찬 기운을 줄이는 실용적인 역할도 했다. 동시에 화려한 태피스트리는 소유자의 부와 권력을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좋은 태피스트리를 제작하려면 많은 양의 실과 오랜 노동,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으므로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태피스트리가 특히 화려하게 발전한 시기는 르네상스와 그 이후의 16~17세기였다. 왕실과 교회는 성경 속 이야기나 고대 신화,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대형 태피스트리를 제작했다. 유명 화가가 밑그림을 그리면 직물 장인들이 그 디자인을 바탕으로 실을 짜서 완성하는 방식도 사용되었다. 라파엘로 역시 사도들의 이야기를 담은 태피스트리 제작을 위한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 밑그림을 바탕으로 제작된 태피스트리들은 시스티나 성당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태피스트리는 단순한 공예품이 아니라 당대의 회화와 긴밀하게 연결된 예술 작품이었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이런 직물 작품을 마주하면 그림을 그리는 것과 그림을 짜는 것은 얼마나 다른 작업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감으로는 붓을 움직여 색을 표현하지만, 태피스트리는 색실 하나하나를 엮어 형태와 명암을 만들어야 한다. 그림 속 인물의 얼굴이나 옷의 주름, 배경의 풍경을 실로 표현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완성된 작품을 벽에 걸어 놓으면 회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실과 장인의 손길이 겹겹이 쌓여 있다. 오늘날에는 그림을 인쇄해 장식하는 일이 흔하지만, 과거에는 벽 하나를 장식하는 데에도 이처럼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박물관을 관람하다 보면 전시실 안의 작품에 정신이 팔려 주변을 놓치기 쉽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로마의 풍경도 잠시 눈길을 돌리게 했다. 실내에는 수백 년, 때로는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작품들이 있고, 창밖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로마의 도시가 펼쳐져 있다. 과거의 예술과 현재의 풍경이 한 공간에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시품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 많은 작품 사이를 걸으며 유명한 조각과 회화, 태피스트리의 세계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관람이었다.

바티칸 박물관은 한 번 방문해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작품이 너무 많기 때문에 미리 관심 있는 작품을 정해두고 찾아보는 편이 현실적일 것 같다. 다음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유명한 조각 몇 점만 서둘러 확인하는 대신, 전시실 하나를 정해 작품의 이름과 제작 시대를 읽어가며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과일과 식물로 장식한 조각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벽에 걸린 태피스트리가 어떤 이야기를 표현하는지까지 알아가면서 말이다. 유명한 작품을 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장식과 전시 방식에 관심을 갖는 것 역시 박물관을 더 깊이 즐기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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