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박물관 그리스·로마 조각, 세계 최고의 조각 컬렉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곳

2026. 10. 27. 05:22ㆍ세계여행/시니어세계일주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 박물관을 다니다 보면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 작품을 만나게 된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도, 런던 대영박물관에도, 로마의 카피톨리니 박물관에도 훌륭한 고대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바티칸 박물관에서 조각들을 둘러보다 보니 이곳의 작품들이 유난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조각의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다. 인체를 표현한 정교함, 작품에 담긴 이야기, 조각을 전시한 공간의 분위기까지 어우러져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 세계를 깊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티칸 박물관의 고대 조각 컬렉션에서 중심이 되는 곳은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Museo Pio-Clementino)이다. 이곳은 18세기 교황 클레멘스 14세와 비오 6세 시대에 본격적으로 확장되었으며, 고대 조각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발전했다. 그 이전인 16세기 초 교황 율리우스 2세도 고대 조각 수집에 큰 관심을 가졌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티칸의 조각 컬렉션은 여러 세기에 걸쳐 수집되고 정리된 결과물이다. 

 

바티칸 조각을 감상하면서 먼저 알아둘 것은 그리스 작품과 로마 작품의 관계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5~4세기에 인체의 비례와 균형을 중시하는 조각 예술이 크게 발전했다. 이후 로마인들은 그리스 조각을 높이 평가했고, 유명한 그리스 작품을 대리석으로 복제하거나 그 양식을 본뜬 작품을 제작했다. 그래서 바티칸에는 그리스 조각가의 원작에서 비롯된 로마 시대의 복제품과 로마 특유의 초상 조각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지금 보는 대리석상이 반드시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원작이라는 뜻은 아니다.

 

라오콘 군상(Laocoön and His Sons)은 바티칸 조각 컬렉션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할 만한 작품이다.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과 두 아들이 거대한 뱀에게 휘감겨 고통받는 순간을 표현한 대리석 조각이다. 일반적으로 로도스 출신의 조각가 하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도로스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바티칸 소장품은 기원전 1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1506년 로마에서 발견된 뒤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이를 확보해 바티칸에 들였다. 고대 신화의 한 장면이 돌덩이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처럼 느껴진다.

 

 

 

라오콘 군상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인체의 움직임이다. 라오콘의 몸통은 비틀려 있고, 근육에는 긴장이 가득하며, 얼굴에는 극심한 고통이 드러난다. 두 아들 역시 뱀에게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세 인물의 팔과 다리, 뱀의 곡선이 서로 얽히면서 화면 전체에 강렬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돌이라는 단단한 재료로 고통과 절박함을 이토록 생생하게 표현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예술가들도 이 작품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이후 서양 조각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벨베데레의 아폴로(Apollo Belvedere)도 빼놓을 수 없다. 아폴로는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음악과 예언, 활쏘기 등과 관련된 신이다. 이 조각은 활을 쏜 직후의 아폴로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바티칸에 있는 대리석상은 서기 2세기 초 로마에서 만들어진 복제품으로 여겨지며, 그 원형은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 조각가 레오카레스의 청동 작품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원작은 남아 있지 않지만, 로마 시대의 복제품을 통해 고대 그리스 조각의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아폴로 조각은 라오콘 군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라오콘이 고통과 긴장으로 가득한 작품이라면, 아폴로는 균형과 우아함을 강조한다.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안정된 비례를 유지한다. 얼굴의 표정도 극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차분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이 작품은 18세기 신고전주의 시대에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고, 고대 조각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여겨졌다. 

 

 

 

벨베데레 토르소(Belvedere Torso)는 완전한 형태가 남아 있지 않은 조각이다.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몸통만 남아 있지만, 오히려 그 불완전한 모습 때문에 시선이 더욱 집중된다. 작품은 기원전 1세기 무렵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테네 출신 조각가 아폴로니오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인물의 정체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고, 현재는 자살을 고민하는 영웅 아이아스라는 해석이 유력한 가설 가운데 하나다. 

 

 

 

이 작품을 보면 조각에서 중요한 것은 얼굴이나 팔다리처럼 완전한 형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몸통의 비틀림과 근육의 굴곡만으로도 인물의 자세와 감정을 상상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도 벨베데레 토르소를 높이 평가한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돌을 깎아 만든 몸통인데도 살아 있는 사람의 힘과 무게가 느껴진다. 훼손된 유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작품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조각이다.

 

 

아포크시오메노스(Apoxyomenos)는 운동을 마친 선수가 몸에 묻은 기름과 먼지를 긁어내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 유형이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조각가 리시포스가 기원전 4세기경 만든 청동 원작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티칸에 있는 작품은 그리스 원작을 바탕으로 한 로마 시대의 대리석 복제품이다. 선수의 팔이 앞으로 뻗어 있어 정면에서 볼 때와 옆에서 볼 때의 모습이 달라진다. 조각을 한 방향에서만 감상하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면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까지 이해할 수 있다.

 

 

잠자는 아리아드네(Sleeping Ariadne)는 몸을 옆으로 누인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한쪽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잠든 듯한 자세가 특징이며, 몸을 감싸는 옷의 주름도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과거에는 클레오파트라를 묘사한 조각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그리스 신화 속 아리아드네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도와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을 빠져나오게 한 인물이다. 이후 낙소스섬에 남겨졌다는 신화가 이 조각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정지된 대리석인데도 잠든 인물의 편안한 자세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바티칸의 비너스 조각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비너스는 로마 신화에서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이며,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에 해당한다. 고대 그리스 조각가들은 여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인체의 비례와 자세를 세심하게 다듬었다. 로마 시대에는 이러한 그리스 조각의 유형을 본뜬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바티칸에 전시된 비너스 펠릭스(Venus Felix)도 그리스·로마의 이상적인 여성상과 고대 조각의 전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이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대리석과 부드러운 몸의 선을 보면 아름다움을 돌에 담으려 했던 고대 조각가들의 노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인물 조각뿐 아니라 로마 황제들의 흉상도 흥미롭다. 바티칸의 흉상 전시실에는 여러 시대의 인물과 황제를 표현한 작품들이 모여 있다. 고대 로마의 초상 조각은 이상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기보다 실제 인물의 얼굴과 개성을 드러내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주름과 입매, 눈 주변의 표현이 인물마다 다르기 때문에 조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서로 다른 성격과 분위기를 상상하게 된다. 그리스 신화의 신과 영웅을 이상적으로 표현한 조각과 로마의 현실적인 초상 조각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감상법이다.

프리마 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 of Prima Porta)는 로마 제국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표현한 유명한 조각이다. 원형은 기원전 1세기 말 또는 서기 1세기 초의 황제상 전통과 관련되며, 잘 알려진 대리석상은 서기 1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본다. 황제는 군복을 입고 한쪽 팔을 들어 연설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갑옷에는 군사적 승리와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장면이 새겨져 있다. 단순히 황제의 모습을 남긴 기념물이 아니라 권력과 통치의 정당성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려는 작품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조각이 예술인 동시에 정치적 상징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조각 전시실을 지나며 동물 조각과 신화 속 인물, 강을 의인화한 거대한 조각들도 만날 수 있다. 특히 강의 신을 표현한 조각들은 강을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내고, 물을 상징하는 항아리나 주변의 상징물을 함께 배치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로마인들은 도시와 제국을 이루는 자연환경까지 신화적인 인물로 표현했다. 이런 작품들을 보면 고대인들이 자연과 신,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인체를 표현하는 기술뿐 아니라 복잡한 개념을 시각적인 형태로 바꾸는 상상력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티칸 조각 컬렉션에는 오랜 역사가 담겨 있다. 고대 유물은 발굴과 수집을 통해 바티칸으로 들어왔으며, 18세기에는 박물관의 전시 공간이 크게 확장되었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조각 가운데는 고대부터 온전한 상태로 전해진 작품도 있지만, 파손된 부분을 후대에 보완하거나 복원한 작품도 있다. 나폴레옹 시대에는 바티칸의 주요 작품들이 프랑스로 옮겨지기도 했으며,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외교적 노력으로 상당수가 반환되었다. 이처럼 지금의 컬렉션은 고대 예술의 역사뿐 아니라 수집과 복원, 문화재 반환의 역사까지 품고 있다. 

 

바티칸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서 그리스·로마 조각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이곳을 꼭 방문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계의 다른 유명 박물관에도 훌륭한 조각들이 있고, 어느 곳이 절대적으로 최고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라오콘 군상의 극적인 움직임, 벨베데레의 아폴로가 보여주는 이상적인 아름다움, 벨베데레 토르소의 강렬한 신체 표현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바티칸만의 큰 매력이다.

 

조각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전시실을 옮길 때마다 고대인의 예술적 상상력과 기술에 감탄하게 된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그저 오래된 대리석상이라고 생각했던 작품도 실제로 마주하면 전혀 다른 감동을 준다. 로마 여행에서 고대 유적과 조각을 좋아한다면 바티칸 박물관은 단순히 유명 관광지를 하나 더 방문하는 차원을 넘어,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이 얼마나 깊고 풍부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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