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여행 ㅡ 프라하 카를교, 만지면 다시 온다는 그 조각상의 비밀

2026. 2. 18. 17:27세계여행/시니어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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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카를교, 만져서 반질반질해진 믿음의 다리 위에서

프라하에 가면 누구나 한 번은 건너게 되는 카를교. 저 역시 그 다리를 여러 번 오갔습니다. 낮에도 건너보고, 해 질 무렵에도 건너보고, 이른 아침 사람 없는 시간에도 걸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처음에는 조각상들이 다 비슷비슷해 보였습니다. 긴 옷을 입은 성인들, 십자가, 천사, 구름, 후광…. 크리스천이 아니다 보니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왜 저기에 서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눈이 가는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유독 북적이는 곳, 모두가 손을 뻗어 어딘가를 만지고 있는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그 부분만 유난히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습니다. 수백 년 된 청동이, 사람 손에 의해 윤이 날 정도로 말입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도대체 왜 저걸 만지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 것이요.카를교에는 현재 30개의 바로크 양식 조각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대부분 17~18세기에 설치된 성인상들입니다. 다리를 건설한 이는 14세기 보헤미아의 왕이었던 카를 4세인데, 지금 우리가 보는 조각상들은 그보다 훨씬 후대에 세워진 것들입니다. 종교적 신앙심이 도시의 정체성이던 시절, 다리 위는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믿음을 드러내는 공간이었던 셈입니다.

 

가장 유명한 조각상은 단연 요한 네포무크입니다. 그는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키다가 왕의 분노를 사 블타바 강에 던져졌다는 이야기를 가진 인물입니다. 카를교 위 그의 조각상 아래에는 부조가 하나 있는데, 사람들이 그 부조를 만지기 위해 줄을 서다시피 합니다. 특히 개와 여왕이 표현된 부분, 그리고 성인의 형상이 있는 부분이 유난히 번들번들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멀찍이 서서 구경만 했습니다. “에이, 미신 아니야?”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진지하게 만지고, 사진을 찍고, 눈을 감고 소원을 비는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가더라고요. 손끝에 닿는 금속의 감촉이 묘했습니다. 차가울 줄 알았는데, 수많은 사람의 체온이 남아 있는 듯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바람에 대한 문제라는 것을요.

네포무크 조각상을 만지면 다시 프라하에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사랑이 이루어진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소원이 이루어진다고도 합니다. 이야기의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하나입니다.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수백 년 동안 이어지며 청동을 닳게 만든 것입니다.

카를교를 걷다 보면 조각상 하나하나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이야기의 집합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성인, 천사를 등에 업은 인물, 칼을 든 순교자…. 처음에는 모두 비슷해 보이던 형상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니 저마다 다른 표정과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예수의 십자가상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쓰인 문구가 금빛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 글씨가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신앙이 정치와 권력, 그리고 예술과 결합했던 시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크리스천이 아니지만, 그 조각상들 앞에 서니 묘한 숙연함이 들었습니다. 믿음의 내용은 다를지 몰라도, 누군가 간절히 기도했던 자리라는 사실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돌과 청동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앞을 스쳐간 사람들의 숨결이 층층이 쌓여 있는 듯했습니다.

 

카를교는 단순히 “예쁜 다리”가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리고,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떠들썩합니다. 그러나 조각상들의 표정은 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블타바 강을 향해, 혹은 하늘을 향해 묵묵히 서 있습니다.

 

이른 아침, 안개가 낀 시간에 다시 카를교를 걸어보았습니다. 사람도 거의 없고, 악사도 없고, 소음도 사라진 시간. 그때야 비로소 조각상들이 온전히 보였습니다. 해가 떠오르며 청동 표면에 빛이 스치자, 닳아 반질거리는 부분이 유독 밝게 빛났습니다.

 

그 빛은 단순한 금속의 광택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손길의 흔적이었습니다. 소원을 빌던 손, 사랑을 기원하던 손, 건강을 바라던 손, 다시 오기를 약속하던 손. 저는 그 반질거림이 참 인간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완벽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희망이 덧칠된 예술이었기 때문입니다.

카를교를 여러 번 건너면서 저는 점점 조각상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누가 누구인지 다 알지는 못해도, “이 사람은 왜 여기 서 있을까?” 하고 한 번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시간만큼 여행은 깊어졌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종교에 공감하지 못해도, 이야기에는 공감할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밀을 지키다 강에 던져진 성인, 믿음을 지키다 고난을 겪은 인물들,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고자 다리 위에 세운 사람들. 그 모든 서사가 카를교 위에 겹겹이 쌓여 있었습니다.

관광객들은 여전히 네포무크의 부조를 만지며 웃고 사진을 찍습니다. 저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만지는 것은 단지 청동이 아니라, “다시 오고 싶다”는 스스로의 마음이 아닐까 하고요.

카를교는 낮에도 아름답고, 노을 질 때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각상들의 반질거리는 부분을 발견한 순간부터 이 다리가 더 특별해졌습니다. 그 작은 광택이야말로 수백 년의 시간을 증명하는 흔적이었으니까요.

프라하 여행에서 카를교를 건너신다면, 그냥 사진만 찍고 지나치지 마시고 잠시 조각상 하나 앞에 서 보시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름을 몰라도 괜찮습니다. 종교가 달라도 괜찮습니다. 그저 누군가의 간절함이 스며 있는 자리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반질반질하게 닳은 부분을 발견하신다면 슬쩍 손을 얹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소원을 믿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이 다리를 건너간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마음이 되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카를교는 돌로 만든 다리이지만, 사실은 사람의 마음으로 이어진 다리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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