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여행 ㅡ 독일 베를린 장벽. 이스트 사이 갤러리 형제의 키스

2025. 12. 29. 20:55세계여행/시니어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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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여행에서의 볼거리는 유럽치고 참으로 소박(?) 합니다. 세계 제2차대전때 독일 대부분의 도시들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고풍스러운 모습이 남아있지 않은 대표적인 나라이기 때문인데요.

그런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 역시 관광객에게 볼거리면에서 눈에 띄는 것이 별로 없는 도시입니다.
기껏해야 동서독 분단시절의 잔재(?)들을 돌아보는 게 관광의 대부분일 정도의 도시입니다. 그런 정치적 역사현장이 쿠게 끌리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베를린에 가서 베를린 장벽을 건너뛸 수는 없었기에 가봅니다.



베를린 장벽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입니다. 이곳은 베를린 장벽이 실제로 남아 있는 구간 중 가장 길게 보존된 장소로, 약 1.3킬로미터에 걸쳐 장벽 위에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슈프레 강(Spree 강)을 따라 Mühlenstraße라는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으며, 특정한 한 지점이 아니라 장벽 전체 구간이 전시 공간입니다. 따라서 어느 쪽에서 접근해도 벽화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역은 Warschauer Straße역입니다.
이 역은 베를린의 주요 환승역 중 하나로, S반(도시철도)과 U반(지하철)이 모두 정차합니다. 역에서 내리신 뒤 오버바움 다리(Oberbaumbrücke) 방향으로 도보 이동을 하시면 약 5분에서 10분 정도 안에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시작 지점에 도착하실 수 있습니다.  경로는 표지판도 잘 되어 있고 관광객 이동이 많아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또 다른 가까운 역으로는 Ostbahnhof역이 있습니다.
이 역에서도 S반을 이용하실 수 있으며, 역에서 나와 강 쪽으로 걸으시면 약 7~10분 정도 후에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의 중간 또는 끝 부분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쪽에서 접근하시면 비교적 한적한 구간부터 감상하실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야외에 개방된 공간이기 때문에 별도의 입장료나 운영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언제든지 자유롭게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낮 시간대에 방문하시는 것이 벽화 감상이나 이동 면에서 더 편리합니다.



전철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워낙 유명하여 베를린 시민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친절하게 길안내를 해줍니다.



길이가 1.3km에 걸쳐 있어 다양한 그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그림들이 많아 냉전시대의 잔재라는 것과는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기도 합니다. 배를린 장벽을 사이에 두고 바짝 붙은 건물들도 있어 그런 모습들이 아주 신기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에서 사진을 찍을 때  '베를린 여행갔구나!'하고 바로 알아 차릴수 있는 그림이 있는데요.
이 그림은 과거 동독의 지도자였던 에리히 호네커와 소련 지도자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인사로 입맞춤을 나누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냉전 시대 사회주의 국가들 간의 관계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현재 이 벽화는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안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합니다.



여행을 와서 굳이 자유와 분단의 댓가에 대해 떠올리게 하는 곳을 관광지라며 둘러보는 일이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요.
한국도 아직 분단 국가라 더 씁쓸하게 느꺼지는 것 같더라고요.



에스트 사이드 갤러리라고 불리우는 베를린 장벽 옆에는 슈푸레강이 흐르는데요. 이 강이 있는 쪽 으러니까 아래 사진속 왼쪽이 동독쪽이었어요. 실제로 베를린 장벽은 동독에서 세운 것이죠. 자유를 찾아 목숨걸고 서독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낞아 장벽을 세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빌딩이 뻔히 서로 보이는 곳에 장벽이 있으면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동서독으로 나뉘게 된 것은 전쟁의 패배와 그 이후의 국제 정세 변화 때문입니다. 1945년 독일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자, 독일은 전범 국가로서 독자적인 주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고, 미국·영국·프랑스·소련 등 전승국들에 의해 분할 점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독일의 재무장과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해 독일을 여러 점령 구역으로 나누어 통치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령국들 사이의 이념적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미국·영국·프랑스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독일을 재건하려 했고, 소련은 사회주의 체제를 확산시키려 했습니다. 이러한 대립은 냉전의 시작과 맞물려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결국 서방 진영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수립되었고, 소련이 점령한 동쪽 지역에서는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세워지면서 독일은 두 국가로 공식 분단되었습니다.
특히 수도였던 베를린은 동독 한가운데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자체가 동서로 나뉘어 상징적인 분단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후 동서독은 서로 다른 정치·경제 체제 속에서 발전하게 되었고, 이는 독일 분단이 단순한 영토 문제가 아니라 냉전 체제 속 이념 대립의 결과였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히틀러라는 전대미문의 리더 하나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결국 그에대한 응당한 댓가로 나라고 동서로 나뉘는 일이 발생했던거지요.

베를린 장벽을 돌아보며 마음이 착찹해지는 이유가 있는데요. 한국도 제발 정신 올바른 리더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고 능력도 없는 리더 말고요. 히틀러같은 독재재 말고요. 역사에 길이 남을 리더가 나와 향후 더 발전해갈 수 있는 나라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걸출한 리더가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일겁니다.

베를린의 관광지는 한국이 분단구까라서 그런지 관광지라는 곳들이 그리 마음 편하게만 둘러볼만한 곳들은 아니라는 특징이 있는 여행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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